top of page

"나 표현 못해도 나 표현 하리라"

저는 매주 설교가 연설이 될까 무섭습니다. 특히 절기에 드리는 설교는 더욱 두렵고 무섭습니다. 어떤 분들은 매주 설교를 11 년간 했으면 어느정도 수준에 도달하지 않겠느냐고 말씀도 합니다. 설교를 많이 하면 익숙해 진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설교가 익숙해 질 때 저는 설교를 가르치기 시작할 것이고, 설교를 만들기 시작할 것이며, 설교를 꾸미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럴때 설교는 연설이 되고 웅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설교와 연설의 차이가 무엇일까 ?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예수님의 행동으로 나라는 한사람에게 다가오신 것이지요 . 말씀에서만 배우던 그 분이 성경말씀대로 마굿간에 태어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행하심은 지극히 고집스럽고 강팍한 죄인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건강하게)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의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어떻게 인식이 되어야 하나요? 이 절기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보내주심으로 하늘에서 이뤄지는 일들이 땅에서 이뤄지기를 원하시고 ,하나님깨서 친히 약속대로 아들을 보내심을 친히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의 말씀을 약속으로 받은 사람에게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성경말씀대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이 마음으로 깨달아 질 때 이것은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능력이 되고 넘치는 기쁨이 되는지그이유를알게되며비로소기쁨이되는것입니다.이럴 때 우리 마음에 오랫동안 쌓아두었던 모든 아픔에서 자유할 수 있는 참 자유가 능력으로 주어짐을 직감적으로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17)


저에겐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의미는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약속대로 실행하셨다는 뜻입니다. 내가 무엇이길래? 나를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 자신의 아들을 주셨다는 말인가?에 질문의 대한 답을 찾도록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저의 답답한 마음을 해결할 만큼의 시원한 답이 없었습니다. 그 답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려고 작정하신 그 사랑의 마음을 실행하신 그 아들때문에저는그시랑앞에무너질수밖에없다는사실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나의 성탄절의 의미요 나의 기쁨이 된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이 사랑을 확인하시고 하나님처럼 이사랑를 표현하시길 축복합니다. 이 한번의 표현은 모든 아픔을 자유케 할 것이며 성탄의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절기가 될 것입니다. 샬롬

조회수 29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보는 것 만큼 사는 삶”

사람은 보는 것 만큼 사는것 같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만큼 봅니다. 생각을 좌우하는 것은 “무엇을 믿는냐?”에 달려있지요. 사람은 스스로 확신하는 것에 자신의 삶을 드리게 되어있지요. 다시 말하면 확신하는 것 곧 믿는 것 만큼 보고 보는 것...

“복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되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을 늘 사모하고 추구하며 그 얻어지는 복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자 새해 벽두부터 옷깃을 여미며, 마치 단거리 경주자들이 2020 년 앞에 보이는 맛있어 보이는 고기덩이리를 향하여, 그것을 먼저 쟁취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쏟아 부어버리는...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