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유학을 나올 때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셨고 공부를 하게 하셨다는 굳은 확신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는 두렵고 힘들지만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내가 이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안 마치는 것과는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다면 가야한다는 굳은 다짐도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고, 그런 기도도 드릴 수 있었다. 마음은 힘들었지만 그런 기도를 드리는 것이 주저함은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결혼한 후에는 그런 기도를 드릴 수 없었다. 영주권을 준비하고 기다리면서 기도를 하는데 영주권이 잘 진행되게만 해달라는 기도를 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주의 인도하심이고 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영주권이 안되는 상황만큼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때문인지 예전처럼 기도하지도, 그렇다고 무작정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 또한 하지도 못하면서 마음이 점점 불편해져갔다. 말씀을 봐도 “너 자신을 속이지 말라”라는 구절만 마음 속에 맴돌았다. 너무 너무 불편했다. 말씀도 기도도 마음처럼 되질 않기만 했다. 기도를 해도 내 마음 속 이야기보단 그냥 수박 겉 핥기식 기도만 하게 되고, 말씀도 눈과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럴 수록 ‘나는 왜 제대로 못하지’ 하는 나를 정죄하는 마음만 커졌다. 한편으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믿고 생활했던 결혼 전 일 때 생각이 났다. 결혼 전이 더 잘 믿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왜 이럴까...

그러던 와중 예배를 드리는데 말씀 중에 ‘하나님과의 자연스러운 관계’라는 말이 마음 속에 들어왔다. 나와 하나님과의 자연스러운 관계. 자연스러운 내 있는 그대로를 보이고 드리되 그게 그 만큼 자연스럽게 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관계. 나는 그렇게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고 드리나? 그저 신앙인 교과서에서 나올 법만 모습을 내 맘대로 생각하고 나에게 맞추면서 나를 꾸미고 보여드리지 않았나? 하나님 또한 내가 생각하는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나?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내 마음 속 하나님은 내가 있는 이 땅을 언제든지 흔드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대학원 때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기도 또한 언제 나를 흔드실지 몰라, 내가 마음 속으론 준비하고 있어야해는 리마인더 같은 기도였다. 하지만 결혼한 지금 나는 떠날 수 없는데 나를 흔드시면 난 어떻게 해야하지…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주의 반석 위에 서라. 속지 말라.

나는 이제 나를 흔드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사탄은 나를 흔들리게, 그렇게 흔드는 것이 하나님이라고 속이는 마음을 준다. 이런 마음으로 믿었던 결혼 전 내 모습 또한 잘 믿고 있다는 위로로 나를 속이는 것이었다. 잘 믿고 못 믿고 역시 내 마음 속 기준이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곳에서 있는 그대로 예배하길 원하신다. 자연스러운 관계를 갖기 원하신다. 지금도 영주권이 안되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흔드시는 것이 아닌 뜻대로 인도하시는 것임을, 나의 작은 생각, 계획보다 더 큰 뜻으로,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