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 당시 나에게 낯설고 새로운 땅인 미국에 첫 발을 내디딘지 말이다. 처음 도착을 하고 우선으로 했던 일이 괜찮은 한인 교회를 찾는 일이었다. '괜찮은' 이라건 순전히 낯선 미국 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라는 의미였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건 사실 기억 너머의 어렸을 적인 두 살 즈음이다. 가족이 서울로 상경하고 어머니가 고모의 권유로 나를 등에 업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다. 약간 철이 들어 보니 나는 교회에 매주 출석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된다 해서 가는 것 처럼 왜 가야 되는 지도 모른 채 교회에 다니었다. 사실 헌금하라고 준 돈을 들고 교회로 바로 향하지 않고 한창 빠져 있던 전자 오락을 하기 위해 교회 가는 길에 있던 오락실로 가는 게 심심찮았고 교회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청소년기를 보내었다. 교회에 나가는 가장 큰 동기는 복을 구하는 것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마 이 둘에 대하여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 종교라 하기 힘들겠지만 삶과 죽음을 종교가 책임을 져 준다니 교회 생활에서 매달릴 만한 것은 이것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전에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새로운 지식들이 내 생각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앞의 두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가 선결 요건이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각종 종교 행위가 무슨 소용인가. 진화론에 빅뱅에 과학자들이 하는 얘기는 논리가 짜임새가 있고 뚜렷한 증거를 들이대니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안 계실 수도 있다니 당혹스럽고 허탈감에 빠져든다. 믿음의 근거가 뿌리채 흔들려 버리는 노릇이다. 비록 과학자들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과학은 이제는 하나님의 존재를 당연히 받아들였던 것처럼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내 사고 방식도 과학적인 인과 구조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멀어져 가 버렸다. 그 당시 크게 기도했던 것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무엇으로 망설이랴 교회가 나에게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게 발길이 끊어졌다. 그러다 미국에 와 언급했 듯 필요에 의해 교회를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그만 둘 때와는 좀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믿으려 하지 않았다. 믿음은 증명의 대상이 아니다. 물질 세계를 다루는 과학은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를 구하는 미련함을 품지 않고 다른 방향에서 하나님을 바라 보기 시작했다. 박사 논문이 거의 끝나고 잡을 찾기 시작하며 불안한 마음이 밀려 왔다. 불안한 마음에서 였는지 성경책을 들고 아침 일찍 학교 가는 길에 있는 공원으로 빠져 넓은 저수지 앞에 차를 세우고 신약을 매일 읽기 시작했다. 예수님 말씀에 마음이 뭉클하고 감동에 젖어 들었다. 마치 인자인 예수가 갈릴리 호수에서 언덕 위에서 곳곳에서 선포하시는 그 말씀이 시공을 초월해 내 귀에 들어와 마음에 꽂히었다. 말씀 안에 담긴 진리가 마음을 적시우고 깨달음을 주었다. 또한 예수님의 고난의 죽음과 죽음을 이겨낸 부활은 환호와 벅찬 감격으로 다가왔다. 갈릴리 땅에서 메아리 친 진리의 말씀이 잠시의 파닥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도 굴복 시키지 못하는 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땅끝까지 선포될 것임을 알리는 승전보와 같은 일이었다. 이제 예수와 만난 나는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포도나무에 달려 수액을 공급받는 가지처럼 그 말씀을 접하고 받아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고 교회를 다니는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성경을 통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