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나눠요 (정의진 집사)


 제가 가장 좋아하고 의지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8-10) 예상한 고난으로 예상치 못한 고난으로 단 한순간도 편하게 쉬어 본 적이 없었던 2년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말씀이 어찌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우겨쌈’이나 ‘핍박’,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더 많이 받는 우리라는 사실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에 그게 나를 어쩌지 못한다는 사실을 - ‘나’라는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과 은혜의 풍성하심으로 - 이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원하던 모습으로 이던 그렇지 않은 모습으로 이던 시시때때로 제게 알맞은 것과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을 체험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흐르지 않는 시냇물이 썩 듯, 받기만 하고 흘려보낼 줄 모르던 그 모습은 저를 안에서부터 썪어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신명기 1:1-8절에서 나타났던 늙은 지도자 모세의 마지막 설교에서 처럼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를 두고 고민이 됩니다. 유난히도 신명기 1:3-4절이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말하는 시점이 40년의 광야 생활이 막 끝난 후였다는 것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열 두 정탐꾼이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보고할 때 보여준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 거대한 적 앞에 압도당해 상황을 이기시는 하나님을 작게 여기는 모습, 을 보인 이후로 신명기에서처럼 가르친 모습이 민수기 속 모세에겐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모세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찌감치 가르치지 않았을까. 왜 모세는 여호수아 이외엔 믿음의 계보를 이을 사람을 교육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신명기를 계속 읽다가 이내 아차 싶었습니다. 신명기 6:4-9절 모세는 늙은 몸을 이끌고 산에 올라 유언과 같은 설교를 하는 장면에서 듣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하고 하나님을 그냥 하나님이 아닌 ‘우리’라는 관계로 보았고, 나의 모든 것을 다해서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전했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든지 안에 있던 밖에 있던, 말씀을 읽음으로 행동으로. 모세의 이 모습이 제 뒤통수를 치는 느낌이었습니다. 죽을 때가 다 되가서야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이 리더를 보고 저는 ‘실패한 교육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들으라’고 말하는 이 모세의 얼굴에 예수님의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하시는 말씀이 겹쳐 보입니다. 지금껏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의 결과를 체험하며 지냈던 그 삶을 나는 과연 누구에게 전하고 있을까. 나는 과연 여호수아와 같은 제자를 낳을 수 있을까. 과연 말로 행동으로 전하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삶에 녹여 드러나는 삶을 살았는지 깊이 고민했습니다.

 이렇게 단 한순간도 편한 적이 없었던 2년 동안은 참으로 휴식이 있었고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순간 순간들이 지금은 후배들에게 전하는, 혹은 그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재료가 되어서 그 모든 의미를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크신 경륜 안에 있기에 제가 잘하든 못하든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의 고난을 내일의 교보재가 되어 쓰이지 않을 까 하는 기대를 해 봅니다. 고후4:11-15절에서 앞에서 말씀드린 모든 것의 의미를 알게 해주는 깨달음을 얻고 나가게 됩니다.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