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 8:2)

먼 길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 잡으신 살진 송아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풍성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동행하는 지금의 시간은 은혜와 감격 그 자체입니다. 성경을 알려주신 목사님과, 기쁨으로 교회를 섬기는 목자님과 집사님들, 앤아버 광야의 삶을 통해 함께 하나님을 만나고 주 안에서 성장해 가는 청년들과 성도님들, 이 모든 인연이 제겐 너무도 귀합니다. 대학부로, 만사로 섬기고 있는 한 영혼, 한 영혼과 나누는 식사 한끼, 차 한잔이 제겐 너무도 감사한 시간입니다. 새벽 기도가 있는 날이면, 한 영혼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눈물로 기도하는 제 낯선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합니다. 이에 더해, 포기한지 오래된 연구와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제 비전까지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를 인도 하셨습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4:12-13)

최근에 배운 이 바울의 고백이 제 마음을 울립니다. 비천에 처하고 배고팠던, 풍부에 처하고 배불렀던, 이 모든 시간 가운데 하나님은 제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평안을 누리고, 예수의 보혈로 보여주신 그 사랑의 크기를 비천과 풍부의 매 순간마다 떠올리게 하십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내딛은 발걸음 하나를 보시고, 하나님은 홍해 바다를 가르십니다. 내가 따를 것은 세상의 권세가 아닌 하나님의 길임을, 경쟁과 고생이 가득한 세상의 안목이 아닌 하나님의 안목임을 고백합니다.

에세이를 적으며 지난 1년간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렇게 기쁨이 넘치고,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었나 하는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성과 논리로 이해한 성경 말씀이 어찌하여 제 눈에 눈물을 맺게 하는지, 마음의 감동에서 멈출 수 있는 일이 어찌하여 제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기까지 했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인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 제가 한 가지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6:33) 이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제 삶의 우선순위로 두려는 마음이 그것입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클린룸에 반도체를 만들러 들어갈 때,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이 어리석고 모자란 제 능력이 아닌, 제 마음의 동기를 보시고 평안과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중언부언 글이 길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두는 삶 가운데서 분에 넘치게 누리는 은혜를 적다보니 글이 늘어 졌나봅니다. 오직, 이 모든 은혜와 선물을 값없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할 뿐입니다.